팀원은 딱 리더의 그릇만큼 따라준다.

팀원은 딱 리더의 그릇만큼 따라준다.
Photo by Annie Spratt / Unsplash

서른되기 4일 전이다. 올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다이나믹 했다. 고난과 역경이 그저 고난과 역경의 시간으로 기억되느냐, 학습과 성장의 경험으로 남느냐는 한끝 차이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고, 다 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여기까지 버텨내고 이끌고 온 열정에 기름붓기의 나를 포함한 구성원들이 억울해서라도, 철저히 학습하고 성장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올해 깨달은게 있다면, 결국 ‘리더’의 책임감, 리더의 역량, 리더의 역할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돌아보면 부끄러움으로 가득하다. 나는 항상 원망하고, 기대하기만 하는 리더였던 것 같다. 잘하고 싶다는 의욕만 앞섰지 구체적인 how to를 제시하지 못하고, 혼자 심장 두근 거리며 꿈꿨지 팀원들이 심장 두근거리게 만들지는 못했다. 열정과 진정성만으로, 어린 소년에게 마라톤 완주를 뛰어야 한다고 강요했던 것이 나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데 팀원들은 얼마나 머릿속이 복잡할까? 나도 how to를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데 그 옆에서 함께 연말 저녁까지 야근하는 팀원들은 얼마나 힘들까? 나는 대표랍시고, 우리가 함께 이뤄낸 것들에 대한 모든 찬사를 받는데 그 뒤에서 조용히 함께 뭔갈 이뤄낸 팀원들은 무엇을 받았을까?

스타트업이니까, 멋진일을 하고 있으니까 라는 그럴듯한 말 속에 갈리고 희생되어지는 우리 팀원들의 소중한 젊음에 대해서 나는 어느 정도 무게감을 가지며 살아왔을까?

어설프게 설계된 BM, 어설프게 짜여진 조직도, 어설프게 주어진 R&R 사이에서 여기까지 따라와준 팀원들을 생각하니. 주말에 넷플릭스 켜고 치킨이나 쩝쩝 거리면서, 사업한걸 후회하곤 하는 내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리더의 자리는 원래 외로운 것이라고, 팀원들은 절대 대표의 마음을 모른다고.
회사가 망하면 팀원들은 떠나지만 대표는 오롯히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너무 감정이입할 필요 없다고 외부에서 그리고 내 내면에서 최면걸듯 이야기 하곤 했었다.

나는 매번 같은 결론을 만났다.
그럼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며 도대체 왜 사업을 해야하는 것일까? 나는 왜 그 책임을 져야하고, 그렇게 까지 해결하고 싶다는 문제에 얼마나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걸까?
정든 사람을 내 손으로 떠나 보내고, 절대적으로 역량이 거기까지인 사람에게 채찍질 해대며 성장을 강요하는 것이 대표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면, 난 나약해서 못한다.

예전에 존경하는 대표님에게 물어본적이 있다.
“대표님은 왜 사업을 하냐고”
그럴듯한 대답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심플했다.
“함께하고 싶은 멋진 사람들과 계속 재미있는 도전을 하고 싶다고”

그땐 참 겸손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어렵고 또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었다.

회사의 지표가 만족스럽지 않은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퇴근하는 팀원들을 보며 밉고 서운하다 생각했던적이 있었다. 팀원들과 우리의 비전과 목표에 대해 더 공감하고 공유하고 싶어 술먹자고 했는데, 매몰차게 약속있다고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은 우리회사가 어렵고 위기가 오면 누구보다 먼저 돌아서겠구나, 우리 사이의 관계는 월급으로 이어진 그 이상 그 이하의 관계도 아니구나 자책할 때도 있었다. 주말에 다같이 모여 스터디를 하고, 퇴근하고 같이 직무 학습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기뻐하지 않는 팀원의 얼굴을 보며, 성장하고 싶다는 말은 다 개뻥이구나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쓰고 보니 나는 미친놈이었던 것 같다. 그건 나도 힘든 일이다. 내가 팀원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되묻는다.

팀원은 딱 대표의 그릇만큼 따라준다.

난 항상 열심히 잘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올해는 정말 그렇지 않았다. 제대로 된 how to를 스스로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을 손에 잡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절망적이고 막막한 상황에서 방법만 안다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그 방법을 모르겠는 나는 빠르게 지쳤고 학습, 회고를 외쳐댔지만 정작 진이 빠진 주말 난 아무것도 못했다.

그게 내 그릇이었고, 난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나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노력과 문제해결을 팀원들에게 바랬다.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 나무 소총 하나 쥐어주고 일제 돌격을 외치던 소련군과 정신력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며, 미드웨이 해전을 벌인 일본군. 그들과 나는 무엇이 달랐는가를 회고해본다.

우리팀은 멋지게 해내고 있다. 결국 달성한 목표를 찍어내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는 더이상 어렵다. 라고 생각했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좋은 조직문화와 워크프레임을 설계하고 지속하는 것, 좋은 대표가 되는 것이 세개의 중요성에 대해 어느정도 몸으로 깨달았다.

애초에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대표’란 직책.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딜레마가 껴있다.

어쩌면 나는, 내 20대에 그토록 꿈꾸고 동경했던 스타트업의 대표가 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사업을 시작하고 상상했던 스물아홉의 나는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좋은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좋은 회사란 어떤 회사인지에 대한 위대한 거인들의 인사이트를 나름대로 깊이 공감하며 끄덕일 수 있는 깊이는 얻었다 생각한다.

성공과 실패는 하늘의 뜻이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팀원 밖에 없다. 대표가 어디까지 견뎌내고 어떤 모범을 보여주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 외의 방법도 있겠지만, 내 부족한 능력으로는 할 수 없음도 인정했다.

서른의 내 리더쉽은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다.

팀원은 딱 리더의 그릇만큼 따라준다.
내가 어떤 태도 어떤 집념 어떤 진정성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같은 팀원도 다른 사람이 된다.
실패는 결과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결과 앞에 마주선 팀이 더 가는것을 멈춰섰을 때다.